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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덴탈케어

치약이 없을땐 뭘 사용했을까? 치약의 역사 [에스플란트 치과병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의학기술이 발달하여 치과 치료를 쉽게 받을 수 있게 되고, 다양한 기능성 치약과 칫솔이 존재하여 가정 내에서도 꼼꼼하게 구강 청결관리를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가 오기 전 역사 속에서는 과연 어떻게 양치질을 했을까요? 그 시대의 사람들도 치아의 심미성과 충치 등을 걱정했고 다양한 방법으로 구강 케어를 했다고 합니다.

 


기원전 2000년경의 이집트인들은 부석의 가루와 식초를 이용해서 만든 치아 세척제, 즉 치약을 사용했습니다. 이후 3,000년 동안 아주 조금의 변형만을 거쳐 지속적으로 부석을 사용했는데, 이는 사람들이 부석을 아주 이상적인 치아 세척제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부석에 뛰어난 치아 미백 효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부석은 치아의 에나멜을 닳게 하여 치아를 상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단점도 함께 지니고 있었죠.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부석을 사용한 것은 부석의 단점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인들은 소변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상상만으로는 좀 엽기적이기까지 한데요,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도 암모니아 성분을 함유한 치약이 사용된 적이 있었는데 소변의 암모니아에 실제로 치아를 깨끗하게 만드는 기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로마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처음 알게 되었을지가 너무 궁금해지네요.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잘 빻은 동물 뼈와 조개껍데기에 숯 가루와 나무껍질을 첨가하여 치아를 닦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입안을 상쾌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입을 헹굴 때 소변을 사용한 것이죠. 일부 부유층 사람들은 오줌의 농도가 짙다고 소문난 포르투갈인들의 오줌을 수입해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서기 1000년경 페르시아인들은 태운 뿔, 빻은 달팽이 껍데기, 석고, 부싯돌에 벌꿀을 섞어서 만든 치약을 선호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강한 연마 효과로 인해서 많은 부작용이 발생했기 때문에 과도한 사용을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중세 유럽인들은 외과 의사를 겸하고 있던 이발사에게 가서 치아를 줄로 갈아낸 다음 그 위에 질산을 입혀서 마무리하는 치료를 받았습니다. 질산을 이용하면 치아를 아름답고 하얗게 만들 수 있었으나, 질산이 에나멜을 녹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치아의 수명을 단축시켰죠. 과거의 치아미백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이전과 달리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치약이 나온 것은 19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입니다. 영국의 한 화학자가 치아를 마모시키지 않고 미백효과를 거둘 수 있는 중탄산소다와 강화제인 스트론튬을 첨가한 치약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802년 이탈리아 나폴리의 의사들은 내원하는 환자들의 치아가 착색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치는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그 지역의 상수도에 함유된 불화물의 농도가 높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시는 물에도 불화물을 첨가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의 일이었다고 합니다. 1956년에는 ‘프록터 앤 갬블’사가 불화물이 첨가된 최초의 치약을 만들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유연하게 구부러지는 튜브형 치약 용기는 1892년 코네티컷에서 워싱턴 셰필드 박사의 ‘크렘 덴티 프라이스’의 출시와 함께 처음 세상에 나왔다고 합니다.

 

 

치약, 칫솔이 없던 과거에도 치아를 깨끗하게 하고 구취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을 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착색된 치아를 다시 하얗게 되돌리고 싶어 했다는 부분에서 치아의 심미성에도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러한 역사 덕분에 지금의 치약, 칫솔이 존재하고 우리가 편하게 집에서도 구강관리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올바른 양치질은 구강 관리의 기본입니다. 항상 꼼꼼한 양치질을 습관화하시고 치간 칫솔, 치실 등을 활용하여 음식물 찌꺼기 남지 않도록 관리하시기 바랍니다.